대통령의 사면권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 최고 권한 중 하나다.
그 무게는 법 위에 서라는 뜻이 아니라, 법의 엄정함을 보완해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라는 사명이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을 두고 불거진 ‘사면권 남용’ 논란은 이 권한이 더 이상 치유와 통합의 수단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물로 전락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이번 사면 명단에는 국민 다수가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포함됐다. 권력형 비리, 직권남용, 횡령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도 ‘국민 화합’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풀려난 이들의 얼굴은, 국민 통합이 아니라 정치적 보은(報恩)의 표정에 더 가깝다. 이것이 과연 사면권이 지향해야 할 정의의 모습인가.사면권 행사는 헌법이 허락한 권리라지만, ‘합법’이 ‘정당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사면은 권력자의 독단일 뿐이며, 이는 민주주의 신뢰를 파괴하는 폭거다.
더구나 사면 대상이 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경우라면, 이는 사면권이 아니라 정치적 면죄부에 불과하다.역대 정권이 사면권을 어떻게 써왔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기억한다.
정권 말기 측근 구출, 집권 초기 정치 빚 갚기, 여론 무마용 ‘정치적 선심’이 반복되며 사면권은 국가 제도가 아닌 권력 장난감이 돼왔다.
이번 사면이 그 전철을 밟는다면, 그 끝은 신뢰의 붕괴와 권위의 몰락일 뿐이다.대통령 사면권은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잠시 맡겨둔 권한이다.
국민이 준 권한을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사적 거래에 쓰는 순간, 헌법 정신은 무너진다.
정치적 사면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 개혁 없이는, 사면권은 앞으로도 ‘권력형 범죄자 구제 수단’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한다. 사면권은 권력자가 쥔 칼이 아니라, 공동체의 상처를 꿰매는 바늘이어야 한다.
그 바늘을 사적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순간, 민주주의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는 결코 쉽게 아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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