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안전과 직결된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내건 현수막이 경주시민의 분노를 촉발했다. ‘무료 국수 먹었잖아’라는 문구는 단순한 홍보 해프닝이 아니라, 공기업이 지역 주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본지는 이번 사태의 본질과 구조적 배경, 그리고 신뢰 회복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심층 보도한다.<편집자주>글 싣는 순서  1:논란의 본질  2:공공기관 홍보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3:신뢰 회복을 위한 과제                ◇ 오만한 문구, 지역민 자존심 건드렸다[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지난 9월 15일 경주시내 곳곳에 걸린 월성본부 현수막은 지나가던 시민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5년 동안 월성원자력본부가 경주시 지방세로 2,190억을 냈다지요?” “이번 벚꽃 마라톤 때 월성본부가 무료로 주는 국수도 맛있게 먹었잖아!”취지는 ‘지역과의 상생’이었으나, 표현은 “세금 내고 국수도 줬으니 고마워하라”는 시혜적 시각으로 읽혔다.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법적 의무인데 이를 생색내듯 강조했고, 지역사회 기여를 ‘국수 한 그릇’으로 환원한 발상 자체가 주민을 ‘공짜밥 얻어먹는 사람’으로 폄훼했다는 것이다.◇ 분노로 번진 민심현수막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격앙됐다.황성동 주민 김모(52) 씨는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건데 그걸 생색내고, 주민 봉사를 국수 한 그릇으로 표현하다니…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건동 이모(37) 씨는 “원전 불안 속에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국수 한 그릇으로 마음을 달래려는 건가”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도 “원전 갈등으로 민심이 흔들린 상황에서 ‘국수’ 현수막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직격했다. ◇ 정치권·정부까지 번진 파문사건은 곧 중앙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SNS를 통해 “공공기관의 지원은 던져주는 동전 한 푼이 아니다.    주민 존중 없는 소통은 모욕일 뿐”이라며 직설적 비판을 가했다.    국무총리실은 즉각 감찰을 지시했고, 여야 정치권에서도 “공기업 태도라고는 믿기 어렵다”는 질타가 이어졌다.결국 월성본부는 나흘 만에 현수막을 전량 철거했지만, 이미 여론은 등을 돌린 뒤였다.◇ 월성본부의 뒤늦은 해명비판이 거세지자 월성본부는 뒤늦게 사과문을 내놨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사실을 시민들과 공유하려 했으나, 문구가 적절치 못했다. 주민 감정을 고려하지 못해 불쾌감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또한 “내부 검토 절차가 세심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주민 의견을 정례적으로 청취하며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단순 해프닝인가, 구조적 문제인가이번 사태는 홍보 문구의 실수를 넘어, 공공기관 홍보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성과 과시와 이미지 포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지역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은 실종돼 있다는 비판이다.‘국수 한 그릇’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공기업이 주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남았다.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할 원전 운영 기관이 스스로 그 신뢰를 무너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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