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위기는 단순한 인구문제가 아니다.젊은 세대가 떠나고, 남은 노년층의 삶이 고립되는 현상은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영덕군 두 번째 편에서는 청년 인구 감소가 만들어낸 마을의 변화와, 남은 어르신들의 일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방’의 조건을 다시 묻는다.<편집자주>
글싣는 순서1: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2:청년이 떠난 마을, 남은 어르신들의 생존기3:영덕형 자립모델, 바다와 사람을 잇는 새로운 길
◆ 사람이 떠난 마을, 남은 건 시간의 흔적뿐[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잡초가 무성한 골목에선 바람만 분다. 한때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영덕군 내륙의 한 마을은 이제 고요하다. 마을회관에는 어르신 몇 분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눈다.영덕군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약 43%로 경북 지역에서도 상위권이다. 젊은 세대가 빠져나간 자리에 시간만 느리게 흐른다.한 노인은 “예전엔 아침마다 논으로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인사할 사람도 드물다”고 말했다.◆ 노년의 노동, 생존이 된 일상봄이 되면 들녘은 다시 푸르러진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이들은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다. 새벽부터 농기구를 챙겨 밭으로 향하는 일상은 여전히 이어진다.
“힘은 들지만, 일하지 않으면 몸이 더 아파요. 농사는 이제 생계이자 삶의 리듬이에요.”전문가들은 “지방의 고령화는 단순히 인구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농업·어업 등 1차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분석한다.◆ 일자리 없는 마을, 청년은 돌아오지 않는다영덕군의 20~39세 청년 인구는 2010년 약 7,000명에서 2025년 현재 3,000명대 초반으로 줄었다.
군청 인구정책팀 관계자는 “지역 내 일자리 부족과 생활 인프라의 한계로 청년층의 정착률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대다수 고등학생이 졸업 후 포항이나 대구 등 대도시로 진학하거나 취업을 선택한다.
지역경제 전문가 A씨는 “지방 청년 유출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며 “교육·문화·일자리 인프라를 함께 개선하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돌봄의 공백, 남겨진 어르신들영덕군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노년층인 만큼, 돌봄 공백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군은 ‘찾아가는 복지상담’, ‘행복마을 돌봄센터’ 등 노인복지 사업을 운영 중이지만, 외곽 지역은 교통과 인력 부족으로 서비스 접근이 쉽지 않다.지역 사회복지사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응급 상황 대응이 어려운 편”이라며 “마을 단위의 상시 돌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귀촌·세대공존, 조용히 피어나는 실험들창수면과 남정면 일대에서는 청년 귀촌을 통한 ‘세대공존 마을’ 모델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빈집을 정비해 청년 창업인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이다.군 관계자는 “귀촌 청년과 기존 주민이 함께 마을을 유지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작은 성공 사례부터 차근히 확산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인구정책을 넘어, ‘사람이 머무는 환경’을 복원하는 실험으로 평가된다.◆남은 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 그것이 지방의 생존지방의 생명력은 결국 ‘남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증명된다.
젊은 세대가 떠나더라도, 남은 노년층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다.영덕의 어르신들이 논에서, 마을회관에서, 서로를 돌보며 이어가는 하루하루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방의 근간’이다.
영덕군 관계자는 “고령화와 청년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봄서비스와 청년 정착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며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영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