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땅의 결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논과 산, 바다와 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그 자체로 삶의 풍경이다. 본지는 ‘가을, 대한민국을 걷다’ 시리즈를 통해 지역의 자연과 인문, 역사와 사람을 품은 공간을 따라간다. 첫 번째 여정은 동해의 고장, 경북 영덕이다.<편집자주>
◆동해를 품은 가을길, 영덕의 풍경을 걷다
[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동해안의 가을은 유난히 깊고 투명하다.
포항을 지나 북으로 차를 몰면, 어느새 푸른 파도와 금빛 들녘이 맞닿은 영덕이 반긴다.
이곳의 바다는 여름의 열기 대신 차분한 빛을 띠고,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선 송림과 갓 수확한 벼 냄새가 교차하며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영덕의 대표적 명소인 블루로드는 이 계절에 가장 걷기 좋은 길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64km의 탐방길 중 ‘B코스’(풍력발전소~고래불해변)는 가을의 정취를 가장 짙게 품고 있다.
하얀 풍력기들이 도열한 언덕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면, 바람이 노래하고 파도가 답한다.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의 삶이 녹아 있는 고장
영덕은 단순한 해안 관광지가 아니다. 동해의 어촌이자, 낙동정맥이 품은 농촌이기도 하다.
축산항과 강구항에는 새벽 어시장의 활기가 여전하고, 내륙으로 들어서면 영해면의 고택과 오십천을 따라 자리한 마을들이 고즈넉하다.
특히 영해 괴시리 전통마을은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집성촌으로, 고즈넉한 담장과 기와지붕 사이로 코스모스가 흩날린다.
오래된 돌담길을 걷다 보면, 세월이 켜켜이 쌓인 한옥의 숨결이 바람에 묻어난다.영덕의 산촌마을인 병곡면에서는 사과와 밤이 한창이다. 농민들은 “바다는 우리 남편이고, 산은 아내 같은 존재”라며 웃는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들에서 거둔 곡식이 한 상에 오르는 가을의 영덕은 그야말로 ‘풍요의 땅’이다.
◆푸른빛의 상징, 영덕대게의 고향
가을 영덕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영덕대게다.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면, 수심 깊은 곳에서 대게가 살을 찌우기 시작한다.
강구항 인근 대게거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대게찜 냄새가 사람을 유혹한다.
영덕군 관계자는 “10월부터 본격적인 대게 철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수온이 안정돼 어획량도 기대되고, 지역 축제와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바람의 고장, 내륙과 바다가 만든 시간의 층위
영덕의 풍력발전단지는 이 지역의 상징적 지형이다.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오르면, 한눈에 동해와 들녘, 마을이 들어온다.
산맥이 바람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덕에, 이곳의 공기는 늘 맑고 깨끗하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영덕은 연평균 풍속이 전국 상위권으로, ‘풍력의 고장’으로 불린다.
자연의 흐름과 기술이 공존하는 이곳은 ‘에너지와 생태’의 공생 실험장이기도 하다.
◆가을, 마음을 비우고 다시 길 위로영덕의 가을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소박한 풍경 속에 삶의 단단함이 있다. 바람은 늘 불고, 사람은 그 바람 속에서 오늘을 산다.
여행이란 결국, 익숙한 삶의 결을 다른 공간에서 다시 느끼는 일이다.
영덕의 가을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여행메모대표 여행코스 : 영덕 블루로드 B코스(풍력발전단지~고래불해변) / 괴시리 전통마을 / 영덕대게거리추천 시기 : 10월 중순~11월 초순 (낙조와 수확기 절정)특산품 : 영덕대게, 영해 사과, 병곡밤, 오십천 맑은쌀문의 :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