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관세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규모 투자 약속을 요구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고, 우리 정부는 ‘무리한 합의는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측이 속도전에 나서는 듯하지만, 보여주기식 타결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협상의 기준은 시간표가 아니라 내용이어야 한다.이번 협상의 핵심은 관세율 조정이 아니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한국의 반도체·배터리·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까지 거론되면서, 협상이 단순한 무역 이슈를 넘어선 ‘경제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투자 구조와 이익 배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다. ‘속도보다 실익’이 지금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더욱이 이번 협상은 향후 한·미 경제 관계의 틀을 다시 짜는 일이다. 한쪽의 이익만을 위한 협상이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내 산업과 국민 경제가 떠안게 된다. 환율 불안, 수출 감소, 산업 의존 심화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지연이 실패는 아니다’라는 정부의 입장은 타당하다. 불리한 조건이라면 차라리 늦게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물론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핵심축이다. 그러나 동맹이 곧 경제적 종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동맹은 상호 이익의 균형 위에서 유지되는 법이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우호는 양보가 아니라 원칙 위에 선다’는 사실이다.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협상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비공개나 불투명한 절차는 불신을 키운다.
협상의 과정과 논리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산업계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외교의 최우선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국익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은 단순한 경제 협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 방향을 가를 분수령이다.
정부는 어떠한 압박에도 흔들리지 말고 냉정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자,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최소한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