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3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신공항 예정지를 둘러싼 들판에는 스산한 겨울바람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굴착기와 측량장비가 잠시 모습을 보이며 ‘곧 시작된다’는 기대감을 키웠던 곳.    그러나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TK신공항 건설 관련 국비가 전액 삭감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마을 분위기는 단숨에 무거워졌다.“신공항이 멈추면 우리의 삶도 멈춥니다. 이 동네 사람들, 다 그 생각뿐이에요.” 70대 주민 김모 씨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손에 쥔 모자를 움켜쥐었다. “보상 시작된다 해서 기다렸던 시간만 1년이 넘어요. 근데 이제 예산이 없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지요.”◇“내년 보상이라던 말, 다 헛된 약속이었나”… 주민들 허탈·분노 뒤섞여대구시는 내년부터 토지보상에 착수한다며 주민들을 설득해 왔다. 그러나 토지보상을 위한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융자 2,795억 원과 금융비용 87억 원이 정부안 단계에서 모두 빠지고, 국회에서도 복원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실망은 더욱 깊어졌다.소보면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축사 지붕을 고쳐야 하는데, 곧 보상 들어온다 해서 미뤄놨다”며“이러다 몇 년씩 더 기다리면 농사도 접어야 할 판”이라고 불안해했다.의성군 비안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정모 씨는 “토지거래허가구역 묶여 있고, 집 팔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며“정부가 우리 보고 버티기만 하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사업 절차 ‘올스톱’… 2030년 개항 사실상 불가능전문가들과 지자체는 이번 예산 삭감이 사업 전체 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TK신공항 이전 부지 보상 규모는 약 4,800억 원. 감정평가·보상액 산정·지급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기본·실시설계만도 통상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은 공사 일정이 최소 1년 이상 지연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대구시 관계자는“예산이 ‘0원’이 되면 행정 절차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계획했던 공기 단축 전략도 사실상 무산된 셈”이라며“2030년 개항은 현실적으로 다시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경북도 고위 관계자 역시 “주민 불안이 커지고 갈등이 재확산될 수 있다. 정부가 사업 추진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현장 곳곳에 번지는 ‘정지된 시간’… “살 수도, 떠날 수도 없다”취재진이 찾은 군위·의성 일대에는 ‘멈춤의 기류’가 뚜렷했다. 농기계 대신 주민들의 한숨 섞인 대화가 들리고,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수확물 옆에 쌓인 ‘보상 시기 문의 서류’가 먼지를 덮어가고 있었다.한 이장은 “주민 질의가 폭주하는데 대답해줄 말이 없다”며“예산 문제로 보상이 늦어지면 군위·의성 모두 버틸 힘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마을에선 “공항이 멈추면 우리의 삶도 멈춘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신공항이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주거·농업·생계·부동산 결정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정부, 책임 있는 조치 필요”… 지역사회 갈등 확산 우려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번 사태를 단순 예산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도 보상 일정이 흔들릴 경우 주민 간·지역 간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대구시 관계자는“TK신공항은 국가균형발전과 국방력 강화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라며“지역 간 연대를 통해 내년 국비 반영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비안면 주민들은 “없던 공항이 생겨도 문제지만, 약속해 놓고 안 지키면 더 문제”라며“정부가 대책 없이 시간을 끌면 주민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겨울바람이 스치는 군위·의성 들녘에는 아직 공항의 모습은 없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불확실성과 기다림, 그리고 주민들의 깊은 피로감이었다. 주민들은 오늘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공항, 정말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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