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기본소득이 또다시 ‘지방 부담 사업’으로 흘러가고 있다.
농어촌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한 국가적 정책이라면서도, 정작 예산은 지자체에 떠넘기려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케 할 뿐 아니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말할 자격마저 스스로 허무는 모순이다.농어촌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 정책이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 지역 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농어촌의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유지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약속에 가깝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사업을 국비가 아닌 지방비 중심으로 설계하거나, 국비를 일부만 매칭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문제는 지방의 재정 여건이다. 농어촌 지역일수록 재정자립도는 낮고, 복지·인프라·행정 수요는 오히려 많다.
인구가 줄수록 세수는 감소하고,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을수록 복지 지출은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수백억 원에 달할 수 있는 기본소득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은 사실상 “형편이 안 되면 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결국 농어촌기본소득은 지역 간 격차를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 여력이 있는 일부 지자체만 시범사업을 이어가고, 다수 농촌 지역은 ‘정책 대상’임에도 배제되는 역설이 벌어진다.
국가 정책이 지역의 재정 능력에 따라 선별 적용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국가 정책이라 부를 수 없다.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의 책임 회피다. 농어촌 소멸은 특정 지자체의 행정 실패가 아니라, 국가 발전 전략의 결과다. 산업·인구·자본을 수도권에 집중시킨 국가 정책의 누적된 결과를 이제 와서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지방분권을 말하려면 재정 분권부터 논해야 한다. 권한은 주고 돈은 주지 않는 방식은 지방을 살리는 분권이 아니라, 지방을 떠안게 하는 방기다.
농어촌기본소득이 필요하다면, 그 재원 역시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최소한 전액 국비 또는 안정적인 국비 중심 구조가 전제돼야 한다.농어촌기본소득은 실험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농어촌을 살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정부가 진정으로 농어촌의 지속 가능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예산 책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정책은 말이 아니라 돈으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