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19일 오전 8시, 경주시 안강읍 읍내리. 1과 6이 들어가는 날마다 열리는 안강 오일장은 이른 새벽부터 잠시 읍내를 깨운다.    트럭 좌판과 천막 아래에는 채소와 생선, 생활용품이 놓이고,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시장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다.안강 오일장은 규모로 보면 작다. 별도의 건물도 없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장치도 없다.    그러나 이곳은 경북 지역 다수 읍·면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지방 소멸이 가장 먼저 체감되는 장소, 동시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공동체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통계, ‘시장 변화’는 현실행정안전부 인구 통계에 따르면 경북 다수 군 단위 지역은 이미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청년층 유출과 고령화는 수치로 확인되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훨씬 빠르다.그 변화는 오일장에서 먼저 나타난다. 좌판 수는 줄고, 빈자리가 늘어난다. 상인과 손님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젊은 세대의 발길은 끊긴다.안강 오일장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는 골목 끝까지 이어지던 좌판이 이제는 군데군데 끊긴다. 상인 대부분은 60~70대 이상이다. “장사를 그만두면 대신 나올 사람이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생활시장은 ‘경제 공간’ 이전에 ‘관계의 공간’그럼에도 오일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이 아니다.오일장은 생활경제와 공동체가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이다.상인과 손님은 거래 이전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국밥집과 분식집은 장날마다 작은 사랑방이 된다.    단골이 나오지 않으면 매출보다 건강을 걱정한다.한 상인은 “여기는 장터라기보다 동네 모임 같다”며 “사람이 안 보이면 괜히 불안해진다”고 말했다.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방에서 오일장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오일장이 사라지면, 마을도 함께 사라진다전문가들은 생활시장의 붕괴를 지방 소멸의 가속 신호로 본다. 시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상업 기능의 상실이 아니라, 사람이 모일 이유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경북의 한 군 지역 주민은 “장이 없어지고 나니 읍내에 나올 일이 없어졌다”며 “사람 얼굴 볼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생활시장이 사라진 자리는 편의점이나 무인 점포로 대체되지만, 관계는 대체되지 않는다. 지방 소멸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진행된다.◇ ‘유지’냐 ‘방치’냐, 선택의 문제오일장은 자연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차 문제, 교통 통제, 위생 기준 등 행정 부담은 커졌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상인과 지자체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일부 지자체는 오일장을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해 축소하거나 정비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이는 지방 소멸을 앞당기는 선택일 수 있다.안강 오일장은 아직 버티고 있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장날이면 사람은 모인다.    이 ‘아직’이라는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지방 정책의 핵심 질문이다.◇ 장날은 지방의 현재형이다정오가 되면 안강의 거리는 다시 조용해진다. 그러나 오일장이 남긴 흔적은 분명하다. 이곳에는 아직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으며, 지역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신호가 남아 있다.지방 소멸은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오일장이 사라지는 순간, 마을은 숫자보다 먼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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