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물러가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대구·경북 지역 곳곳의 건설현장에는 또 다른 위험이 고개를 든다.
얼어붙었던 지반이 녹으며 약해지는 해빙기(解氷期) 특유의 지반 침하, 옹벽 균열, 절토사면 붕괴, 낙석 사고 등이 그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성 재난이지만,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예고는 있었으되, 대비가 부족했을 뿐이다.대구와 경북은 도시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SOC 확충 사업이 활발한 지역이다.
주택 재개발·재건축 현장부터 도로 확장, 산업단지 조성공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사현장이 산재해 있다.
해빙기에는 작은 균열 하나, 배수로의 미세한 막힘 하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 근로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의 생명과 재산까지 위협한다는 점에서, 봄철 안전점검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문제는 ‘점검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점검이 얼마나 철저하고 실효성 있게 이뤄지느냐다.
과거 크고 작은 붕괴 사고 이후 관계기관은 늘 “사전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드러나는 공통점은 형식적인 서류 점검, 반복되는 지적사항, 개선되지 않는 현장 관행이었다.해빙기 안전점검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구조물 자체의 안정성이다.
옹벽·석축의 균열 여부, 절토사면의 토사 유실 상태, 배수시설 기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둘째, 공사장 관리체계다. 굴착면 안정성 확보, 지반 침하 여부 확인, 비계와 동바리 등 가설구조물의 결속 상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셋째, 위험 징후 발견 시 즉각적인 보수·보강 조치다. 점검 결과를 ‘보고서’로만 남겨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특히 대구·경북은 구릉지와 급경사지가 많아 산사태 위험이 상존한다.
최근 기후변화로 강우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현실까지 감안하면 해빙기 점검은 단순한 계절 대응이 아니라 기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점검 인력의 전문성 확보와 드론·지반탐사장비 등 첨단 장비 활용 확대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건설업계 역시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공기 단축과 원가 절감을 이유로 안전조치를 미루거나 축소하는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의 법적 책임은 무거워졌다.
그러나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는 적극적 예방 체계 구축이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속과 계도에 그치지 말고, 반복 지적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사 중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영세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기술 자문과 안전 컨설팅 지원을 병행해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 ‘채찍’과 ‘당근’의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경각심이다. 작은 균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순간, 사고의 씨앗은 자란다.
안전모 하나, 안전난간 하나가 생명을 지킨다. 반복되는 참사 뒤에 남는 것은 후회와 책임 공방뿐이다.봄은 시작의 계절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는 긴장의 계절이어야 한다.
대구·경북의 모든 공사현장이 ‘점검을 했다’는 기록이 아니라 ‘사고가 없었다’는 결과로 증명되기를 바란다.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며, 점검은 보고서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