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의 원자력발전소 유치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지역의 절박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원전 유치는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닌 지역의 산업 구조와 공동체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영덕은 이미 원전 추진 과정에서 깊은 사회적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
천지원전 계획이 추진되던 당시 지역사회는 찬반으로 갈라졌고, 주민 간 갈등과 행정 불신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정책은 중단됐지만 공동체의 상처는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 유치 논의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원칙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영덕군이 원전을 지역 발전 해법으로 검토하는 배경은 분명하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산업 기반 약화로 지방재정과 지역경제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국책사업 유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 사실상 몇 안 되는 성장 카드다. 원전 건설이 가져올 투자 효과와 세수 증가, 고용 창출 가능성 또한 현실적인 기대 요소다.하지만 기대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원전은 경제성과 동시에 안전성, 환경성, 지역 이미지 문제를 동반하는 시설이다.
특히 영덕은 동해안 관광과 수산업 기반 지역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지역 브랜드 가치와의 충돌 가능성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단기적 재정 효과가 지역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의 태도다. 과거 원전 갈등이 증폭된 배경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소통과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한 주민 불신이 자리했다.
원전 유치 여부는 행정이 결론을 정해놓고 설득할 사안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론의 장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에너지 정책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 속에서 원전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분산화 흐름 또한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역의 미래 전략이 특정 산업 하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돼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지방은 지금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절박함이 성급한 결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원전 유치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영덕군과 정치권은 유치 속도 경쟁에 앞서 사회적 합의 형성에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충분한 공론화와 주민 참여, 객관적 검증 절차 없이 추진되는 원전 논의는 또 다른 지역 갈등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지역의 미래는 개발사업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신뢰 속에서 이뤄진 선택만이 지역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영덕군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