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6조2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고유가 부담 완화와 민생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신속 통과시켰다.    정부는 이 가운데 25조 원을 집행관리 대상으로 묶고, 10조5천억 원은 상반기 내 85% 이상 집행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의 속도와 집중력은 평가할 대목이다. 그러나 같은 정부가 운용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현실을 보면, 정작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지방 문제에는 얼마나 진지한지 되묻게 된다.연 1조 원 규모로 출범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은 기대와 달리 성과가 미미하다. 지난해 배분액 8천973억 원 가운데 실제 집행액은 4천499억 원에 그쳤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집행률은 단순한 행정 지연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정책 설계와 집행 구조 전반이 현장과 괴리돼 있다는 방증이다.    전국 89개 시·군이 소멸 위험에 놓였고, 경북에서도 14개 시·군이 포함된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의 엄중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무엇보다 재정의 ‘우선순위’가 납득되지 않는다. 고유가 대응에는 수십조 원을 단기간에 투입하면서, 지방소멸 대응에는 연 1조 원에 머무는 구조는 균형을 잃었다.    지방소멸은 일시적 경기 대응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적 위기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산업 기반 붕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 재원으로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규모부터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미봉책’에 가깝다.집행 방향 역시 문제다. 기금의 90% 이상이 도로·교량 등 기반시설에 투입되면서 정작 인구 유입과 정주 여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역이 요구하는 것은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교육이다. 그러나 현행 사업은 여전히 토목 중심의 ‘보여주기식’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은 배정됐지만 집행이 더디고, 집행되더라도 체감 효과가 낮은 이유다.이제는 해법이 분명하다. 첫째, 지방소멸대응기금의 규모를 현실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조 원 단위의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 둘째, 재원의 쓰임을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 주거·의료·보육 인프라 확충 등 ‘정주 여건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중앙 주도의 획일적 배분을 넘어 지역 주도의 설계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업의 실효성과 집행률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지방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위기가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며, 방치할 경우 국가 전체의 성장 기반을 흔드는 중대한 변수다.    재정은 정책 의지의 바로미터다. 보여주기식 예산으로는 지방을 살릴 수 없다.    정부가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지금이라도 규모와 방향, 집행 구조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지방을 살리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루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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