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 기자] 대구광역시가 사적 대구 달성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1천50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달성의 실체를 규명했다.
시는 오는 20일 오후 1시 30분 현장공개 설명회를 열고 이번 조사 성과를 시민들에게 공개한다.이번 조사는 대구 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초의 정식 학술발굴조사로 의미를 더한다.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 보수정비사업 지원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달성 남측 성벽 구간을 조사해 왔다.삼국사기에 따르면 대구 달성은 첨해이사금 15년(261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축조 당시 원형이 상당 부분 유지된 희소성이 높은 고대 성곽으로, 경주 월성과 비견될 만큼 삼국시대 대구 지역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으로 평가된다.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성벽 규모는 하부 너비 35m, 외벽 높이 17m, 내벽 높이 9m 안팎으로 드러났다.
대규모 방어 성벽의 면모를 갖춘 구조로,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된 토기편과 축성 기법 등을 종합할 때 축성 시기는 5세기 중엽 전후로 판단됐다.특히 고대 대구 지역의 뛰어난 토목기술이 적용된 사실도 확인됐다.
암반층을 다진 뒤 흙과 돌을 교대로 쌓고, 외면에는 납작하게 깬 돌을 경사지게 층층이 겹쳐 쌓은 후 약 40cm 두께 점토층으로 마감한 구조가 드러났다.
이는 하중 분산과 밀림 방지를 동시에 고려한 고난도 공법으로 분석된다.또 점토 운반과 구조 결합을 위해 대량의 토낭(土囊)을 사용한 흔적도 확인됐다.
이러한 기술은 당시 저수지·하천 제방·대형 고분 조성 등에 활용된 방식으로, 대구 지역의 선진화된 토목 수준을 입증하는 자료로 평가된다.그동안 달성은 단순 토성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조사 결과 돌과 흙을 함께 쌓는 토석혼축 방식과 석축 기법을 혼용한 성곽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너비 2~2.5m 간격으로 나타나는 구획 경계도 확인돼 작업조별 분업체계 아래 대규모 인력이 동원된 계획형 공사였음이 드러났다.문헌에 기록된 조선시대 개·보수 흔적도 실제로 확인됐다.
경상도속찬지리지와 여지도서에는 고려 말과 조선시대 달성을 돌로 보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번 조사에서 성벽 상부에 수직 석축과 보강 흔적이 발견돼 이를 뒷받침했다.
이는 달성이 삼국시대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역 중심 성곽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대구시는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남성벽 조사에 이어 올해 북성벽 발굴에 착수했으며, 내년에는 성 내부 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오는 11월께 학술발표회를 열어 대구 달성의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립한다는 방침이다.황보란 국장은 “이번 발굴조사는 대구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의미 있는 성과”라며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대구 달성을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