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섰다. 친환경차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의 상징적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차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며, 산업계 역시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으로 성과를 자축하기에는 현실의 불편과 한계가 너무도 선명하다.
전국 전기차 충전기 가운데 10%가량이 고장 상태라는 지적은 우리 전기차 정책의 민낯을 보여준다.
전기차 이용자에게 충전기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내연기관 차량의 주유소와 같은 필수 기반시설이다.
목적지 인근 충전소를 찾아갔는데 화면이 꺼져 있거나 결제가 되지 않고, 충전 케이블조차 작동하지 않는다면 운전자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특히 배터리 잔량이 부족한 상황이나 장거리 이동 중이라면 고장 난 충전기 한 대가 이용자에게는 심각한 불안과 시간 손실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불편이 일시적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충전기 10대 중 1대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전 인프라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다는 뜻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충전기 설치 대수를 늘리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 왔다. 얼마를 지원했고 몇 대를 세웠는지가 성과로 평가됐다.
그러나 설치 이후 유지·보수, 관리 인력, 신속한 수리 체계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 양적 확대에 치우친 정책의 한계가 고장률로 나타난 셈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차량 가격 부담, 주행거리 우려와 함께 충전 불편까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전기차 대중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충전소를 찾아도 사용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누가 선뜻 전기차 구매를 결정하겠는가.
이제 정책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충전기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가동률과 이용 편의를 높이는 관리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 충전기의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고장 신고 시 즉각 수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관리 부실을 드러내는 운영사에 대해서는 과감한 제재도 필요하다. 급속충전기와 다중 이용 시설 충전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집중 관리 기준을 세워야 한다.
대구·경북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아파트 단지와 공영주차장, 관광지와 산업단지 곳곳에 설치된 충전기가 제 기능을 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지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친환경 정책은 보여주기 행정에 그칠 뿐이다.
전기차 50만대 시대는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다.
충전기 10% 고장을 방치한 채 미래차 시대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설치가 아니라, 이미 설치된 충전기부터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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