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의 가장 강력한 권한은 예산 심의다. 예산은 곧 정책의 방향이며,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이 기능이 형식적으로 운영될 경우 지방자치는 본질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 본지는 2회차에서는 영덕군의회의 예산 심의 구조를 분석해 재정 감시 기능의 실효성을 짚어본다.<편집자주>글싣는순서상:“질문이 사라진 의회”…영덕군의회 견제 기능 실종중:“수백억 예산, 제대로 걸러지나”…심의 구조의 허점하:“보이지 않는 의회”…신뢰 위기의 본질◆수백억 예산, ‘짧은 심의’에 머무르나
[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영덕군이 매년 편성하는 예산은 수백억 원 규모에 이르며, 지역 개발과 복지, 기반시설 확충에 직결되는 핵심 재원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에 대한 의회의 심의·감시 기능은 지방자치의 핵심 역할로 꼽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덕군의회의 예산 심의가 충분한 검증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예산 심의는 짧은 회기 내 방대한 사업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로 인해 개별 사업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세밀하게 따지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다수 사업이 일괄 상정되는 과정에서 세부 항목별 분석보다는 전체 틀 중심의 검토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심의가 ‘깊이 있는 검증’보다는 ‘절차적 확인’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계속사업은 ‘관성’, 신규사업은 ‘검증 부족’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기존에 지속 추진되는 계속사업의 경우, 이미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는 이유로 구조적인 재검토 없이 유지되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 성과나 효율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이 반복 편성되는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신규 사업은 정책 필요성과 기대 효과가 강조되지만, 비용 대비 효익이나 장기적 재정 부담에 대한 심층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계속사업과 신규사업 모두에서 검증 밀도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재정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삭감보다 유지”…심의 구조 한계 지적
예산 심의 과정에서 ‘조정’보다 ‘유지’에 무게가 실린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의회가 제출된 예산안을 적극적으로 수정하거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기보다는, 집행부가 편성한 틀을 중심으로 검토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재정 분야 한 전문가는“지방의회는 예산을 단순히 통과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필요 없는 부분을 걸러내는 기능이 중요하다”며“삭감과 조정이 활발하지 않다면 감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 “세금 쓰임, 체감 어렵다”
예산 심의 문제는 주민 체감으로도 이어진다.
영덕군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며“의회가 대신 검증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역할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비슷한 사업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는데 유지 이유를 설명 듣기 어렵다”며“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예산 심의 과정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을 경우, 재정 운영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책임 구조 불명확…“누가 결정했나”
전문가들은 예산 심의의 또 다른 문제로 ‘책임 구조의 불명확성’을 꼽는다.
사업 추진 이후 성과가 미흡하더라도, 어떤 과정에서 어떤 판단이 이뤄졌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의회의 승인 과정에 대한 책임 역시 분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실적 한계도 고려해야” 의회 입장
이에 대해 영덕군의회 측은 구조적 한계를 강조했다.
의회 관계자는“집행부 견제 기능과 관련해 일부 지적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제한된 인력과 짧은 회기 속에서 방대한 예산을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각 상임위원회 활동과 현장 점검 등을 통해 나름의 견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재정 감시 약화 우려…지방자치 핵심 과제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 기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지방자치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예산 심의의 실질적 검증 기능이 강화되지 않을 경우 행정 권한은 상대적으로 확대되고,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은 동시에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덕군의회가 예산 심의의 실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는 향후 지방자치의 신뢰도를 가늠할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영덕군의회 관계자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지적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며 “다만 제한된 회기 일정과 인력 여건 속에서 방대한 예산안을 동시에 검토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각 상임위원회 중심의 심사와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심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안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