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국민은 "어쩔 수 없는 인상"이라는 설명을 믿고 기름값 부담을 견뎌 왔다.
서민은 생계비를 줄였고, 자영업자는 한숨을 삼켰으며, 기업은 물류비 증가를 감내했다.
그런데 그 고통의 이면에 가격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신뢰의 배신이자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다.검찰은 국내 4대 정유사가 가격 정보를 공유하고 판매가격 인상을 사실상 공조한 혐의로 관련 법인과 임직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자영주유소를 상대로 거래를 제한하고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아직 법원의 최종 판단은 남아 있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정유산업은 국민 생활과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간산업이다.
시장을 사실상 소수 기업이 나눠 갖는 구조에서 공정한 가격 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기업이 경쟁 대신 담합을 택했다면 이는 시장경제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자가 낸 돈은 정당한 시장가격이 아니라 왜곡된 가격이었고, 그 차액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셈이다.더 큰 문제는 신뢰다. 국제 유가 상승이라는 외부 요인은 국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위기를 틈타 경쟁을 포기하고 이익을 나눠 가졌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시장은 신뢰가 무너지면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공허한 구호에 불과해진다.이번 사건은 법원이 철저한 심리를 통해 진실을 가려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공정거래 당국도 과점 산업에 대한 감시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담합은 적발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가격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보 교환과 시장 왜곡 행위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기업은 이윤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원칙 위에서만 보장된다.
담합은 자유시장경제의 적이다. 만약 이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관련 기업과 책임자들은 법이 허용하는 가장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고통을 기업의 이익으로 바꾸는 행위만큼 시장을 병들게 하는 일은 없다.
이번 사건만큼은 어떤 성역도, 어떤 봐주기도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