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이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서 새로운 성장축으로 도약하려면 지역별로 흩어진 주력산업을 하나의 거대한 산업생태계로 묶어야 한다.    대구와 경북, 부산·울산·경남이 행정구역의 울타리 안에서 기업과 국책사업 유치에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수도권과 경쟁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가진 산업적 강점을 연결해 연구개발에서 생산과 물류, 수출까지 이어지는 ‘영남 초광역 산업벨트’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영남권에는 이미 대한민국 제조업을 떠받쳐 온 탄탄한 산업기반이 있다.    대구는 AI·로봇과 미래모빌리티, 구미는 반도체·전자와 방위산업, 포항은 철강을 기반으로 이차전지 소재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경주는 원전과 SMR 등 차세대 에너지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할 기반을 갖췄다.    여기에서 시야를 부산·울산·경남까지 넓히면 산업적 잠재력은 더욱 커진다.    울산에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창원을 중심으로 한 경남에는 방산·원전·기계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은 항만·물류와 금융·해양산업이라는 강점이 있다.이처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산업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이 모여 있다는 것은 영남권의 큰 자산이다.    문제는 산업정책이 행정구역별로 쪼개져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첨단산업 육성을 외치면서 비슷한 분야의 기업과 정부 공모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일도 반복된다.    제한된 국비와 기업투자를 놓고 지역끼리 경쟁해서는 영남권 전체의 산업 파이를 키울 수 없다.    수도권에서는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금융과 인재가 빠르게 집적되는 동안 지방끼리 벌이는 소모적인 경쟁은 결국 모두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다.산업정책의 판부터 키워야 한다. 대구의 AI·로봇 기술을 구미의 반도체와 울산의 자동차·조선, 창원의 방산·기계산업에 접목하고 포항의 이차전지 소재산업을 대구경북의 미래모빌리티와 울산 자동차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    경주와 창원의 원전산업 역시 연구개발과 기자재 생산, 수출을 아우르는 공동 생태계를 구축할 여지가 충분하다.    부산항과 진해신항은 이들 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뒷받침하는 물류 거점이 되고 부산의 금융기능은 기업투자와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이를 실현하려면 산업을 잇는 교통·물류망부터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대구·구미·포항·경주·울산·부산·창원을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철도와 도로망 없이는 초광역 산업벨트도 구호에 그친다.    TK신공항과 가덕도신공항, 부산항·진해신항을 주요 국가산업단지와 연결하는 물류체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시·도 경계가 사실상 사라질 정도로 사람과 기술, 부품과 제품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지역 산업을 떠받칠 인재 확보도 빼놓을 수 없다.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을 유치해도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어렵다.    영남권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이 공동 교육과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와 AI, 로봇, 이차전지, 원전, 방산 등 전략산업별 인재를 지역에서 길러 지역 기업에 취업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떠한 산업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자체별 공모와 경쟁을 중심으로 한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시·도가 함께 추진하는 초광역 산업 프로젝트에 재정과 규제특례를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반도체·AI·로봇·이차전지·원전·방산·자동차·조선은 지역만의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안보가 걸린 전략산업이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재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균형발전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양대 축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제조업 경쟁력이 미래까지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세계 산업질서가 급속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행정구역별 각자도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기업 하나, 국책사업 하나를 더 가져오는 데 힘을 쏟기보다 지역별 강점을 결합해 더 큰 시장과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영남권에는 이미 필요한 산업기반이 상당 부분 갖춰져 있다. 부족한 것은 이를 하나로 연결할 공동 전략과 실행력이다.    대구의 AI·로봇에서 구미의 반도체, 포항의 이차전지, 경주의 원전, 울산의 자동차·조선, 창원의 방산·기계를 거쳐 부산의 항만·물류·금융으로 이어지는 산업벨트가 제대로 구축된다면 영남은 수도권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국가 성장축이 될 수 있다.    행정구역의 벽을 넘어 산업으로 연결되는 영남경제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방소멸을 막고 영남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