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 기자]경북 영덕의 어르신들이 살아온 마을의 풍경과 일상의 기억을 한 장의 그림에 담고, 그 그림을 다시 마을을 상징하는 티셔츠로 만들어 입는다. 이름하여 ‘입는 마을, 마음 도감’이다.전문 작가의 시선이 아닌 평생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손끝으로 마을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잘 그린 그림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마을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문화예술 활동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영덕군 이웃사촌마을지원센터는 주민 참여형 ‘영해 이웃사촌마을 문화·예술 자율공모사업’의 하나로 ‘입는 마을, 마음 도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13일 밝혔다.영해 이웃사촌마을 문화·예술 자율공모사업은 행정이나 전문가가 프로그램을 정해 주민에게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사업 기획부터 실제 프로그램 집행과 관리까지 전 과정에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를 통해 주민 스스로 지역에서 필요한 문화예술 활동을 발굴하고 사업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아 주민 역량과 마을공동체의 자생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현재 자율공모사업에는 모두 15개 팀, 34명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각 팀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지역과 주민들의 특성을 반영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입는 마을, 마음 도감’ 역시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15개 참여팀 가운데 ‘칠번북도팀’이 프로그램을 맡아 병곡면 지역 4개 마을회관의 어르신들과 함께 진행한다.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어르신들의 ‘그림’이 있다.참여 어르신들은 모두 5회에 걸쳐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의 일상과 기억, 주변 풍경 등을 자유롭게 그림으로 표현한다.그림의 소재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평소 바라보던 마을 풍경이나 이웃의 모습, 농촌의 일상,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와 이야기 등 어르신 개개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한 마을의 모습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다.그 과정 자체가 어르신들에게는 자신의 감수성과 표현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문화예술 체험이 된다.평소 그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어르신들도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가 된다.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서로의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어르신들의 손에서 완성된 그림은 종이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5차례에 걸친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실크스크린 작업을 거쳐 각 마을을 대표하는 단체 티셔츠로 다시 태어난다.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티셔츠 디자인이 되고 주민들이 이를 함께 입는 셈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마을 티셔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특히 마을마다 서로 다른 그림과 이야기가 담기는 만큼 완성된 티셔츠는 단순한 의류를 넘어 해당 마을의 생활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칠번북도팀은 어르신들의 작품을 티셔츠뿐 아니라 달력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주민들의 그림을 생활 속에서 계속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결과물로 만들어 참여자 개인의 경험으로 끝내지 않고 마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자산으로 남기겠다는 취지다.농촌 마을의 역사와 문화는 거창한 기록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이 기억하는 골목과 집, 농사일과 이웃,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 등 평범한 일상에도 한 마을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이번 프로그램은 이러한 일상의 기억을 어르신들의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기록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특히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이어지는 농촌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마을의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기억을 다음 세대와 어떻게 공유하고 남길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어르신들의 그림 한 장 한 장을 모아 마을의 ‘도감’을 만들고, 이를 티셔츠와 달력 등 친숙한 결과물로 제작하는 이번 시도가 주민들의 기억과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색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점도 주목된다.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에 필요한 활동을 고민하고 직접 사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도와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하는 경험 역시 마을공동체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영덕군은 이 같은 주민 주도형 문화예술 활동이 주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웃 간 관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칠번북도팀 우수영 대표는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험들 속에 각 마을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이런 작품들을 각 마을을 상징하는 티셔츠나 달력으로 제작해 주민들이 함께 공유함으로써 마을 공동체마다 가진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조주홍 영덕군수는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자율공모사업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민 주도형 사업이 지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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