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선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세계 각국의 육상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현장에는 트랙 위의 선수들 못지않게 바쁜 사람들이 있다. 대구스타디움 안팎에서 선수와 가족, 관람객을 맞는 자원봉사자들이다.22일 대구스타디움 일원. 경기장을 찾은 외국인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자 곳곳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경기장 위치를 묻는 참가자에게 손을 들어 방향을 알려주는가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넸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때는 손짓과 표정을 섞어가며 목적지를 설명했다. 말보다 먼저 나온 것은 환한 미소였다.현장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다양한 연령대였다.
20대 청년 옆에서 50∼60대 중장년층이 방문객을 맞았고, 70대 봉사자들도 각자 맡은 자리를 든든하게 지켰다.나이 차이는 많게는 반세기에 가까웠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같았다. ‘대구를 찾은 세계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자’는 마음이었다.20대 자원봉사자 윤모.23세) 씨는 경기장 곳곳을 오가며 외국인 참가자들의 길 안내를 도왔다.
한 참가자의 질문에 답하다가도 다른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윤씨는 “처음에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조금 긴장됐지만,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네니 선수들도 편하게 질문했다”며 “작은 안내라도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대구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젊은 봉사자들이 기동력을 앞세워 현장을 누볐다면 중장년층과 어르신 봉사자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와 친절함으로 참가자들을 맞았다.대구지역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대회 운영에 힘을 보탠 봉사자 가운데는 평소 지역 축제와 이웃돕기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70대 봉사자 안모((72세)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고 수많은 참가자를 상대해야 하는 국제대회 봉사가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안씨는 자신의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외국인 선수가 다가오면 먼저 몸을 돌려 맞았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몇 번이고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필요한 곳을 안내했다.안씨는 “젊은 봉사자들처럼 빨리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내가 맡은 자리를 지키며 따뜻하게 맞아드릴 수 있다”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손님들이 대구 시민들의 친절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웃었다.청년 봉사자와 어르신 봉사자가 같은 공간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을 맞는 모습은 이번 대회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세대를 잇는 시민 축제라는 점을 보여줬다.누군가 바쁘면 옆 사람이 빈자리를 채웠고, 참가자가 한꺼번에 몰리면 자연스럽게 함께 안내에 나섰다.
역할을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20대와 70대가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모습 자체가 대회의 또 다른 명장면이었다.세계적인 스포츠대회에서 개최도시의 첫인상을 만드는 사람은 유명 선수나 경기 관계자만이 아니다.
공항이나 역에서 처음 만난 안내요원, 경기장 입구에서 길을 알려준 자원봉사자,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다가온 시민 한 명이 그 도시의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대구스타디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을 받은 참가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 봉사자들은 환한 표정으로 답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국적과 언어, 세대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경기장 안에서는 선수들이 기록을 놓고 경쟁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를 돕는 손길이 쉼 없이 이어졌다.국제 스포츠대회는 경기장과 시설만 잘 갖춘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장까지 불편 없이 이동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때 얻으며, 방문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 역할을 대구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이들의 활동은 경기 결과처럼 숫자로 남기 어렵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받은 친절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길을 잃었을 때 먼저 다가온 사람, 서툰 말에도 끝까지 설명해 준 사람, 눈이 마주쳤을 때 웃어준 시민의 모습이 곧 대구에 대한 인상이 된다.자원봉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대구를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인 셈이다.대구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굵직한 국제육상대회를 치르며 국제육상도시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 배경에는 경기시설과 행정력뿐만 아니라 국제행사가 열릴 때마다 힘을 보탠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다.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역시 다르지 않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최고의 기록을 향해 달리는 동안 대구 시민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대회의 성공을 위해 또 다른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20대 청년의 패기와 50∼60대 중장년층의 경험, 70대 어르신의 연륜이 한데 모였다.
세대는 달랐지만 자원봉사 조끼를 입는 순간 이들은 모두 같은 팀이었다.대회가 끝나면 우승자의 이름과 새로운 기록은 공식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기록 가운데는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것도 있다.무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킨 봉사자들의 땀, 외국인 참가자에게 건넨 미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내민 손이다.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동안 경기장 밖에서도 20대부터 70대까지 대구 시민들의 레이스가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지만 국제육상도시 대구를 움직이는 ‘숨은 주역’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