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랑한 영화는 무엇일까. 한국과 글로벌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이 창작자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의 영화 애호가로 관객 앞에 선다.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인들의 취향과 영화적 영감의 원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까르뜨 블랑슈(Carte Blanche)’ 라인업을 공개했다.‘까르뜨 블랑슈’는 ‘전적인 선택의 자유’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문화계 명사들이 자신의 영화적 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 작품을 직접 선정해 관객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올해는 ‘영화인 특집’을 콘셉트로 감독 김지운, 배우 판빙빙, 촬영감독 홍경표가 호스트로 참여한다. 연출과 연기, 촬영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온 세 사람이 이번에는 창작자가 아닌 ‘시네필’로 돌아가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를 소개한다.이들이 선택한 작품은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1979),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블루’(1993)다. 영화제 기간 작품 상영과 함께 진행되는 GV(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각 작품을 사랑하게 된 이유와 자신의 창작 세계에 남긴 흔적을 관객들과 공유한다.‘조용한 가족’(1998)으로 데뷔해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밀정’(2016)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해온 김지운 감독의 선택은 ‘매드 맥스’다.‘라스트 스탠드’(2013)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거미집’(2023)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활동 무대를 넓혀온 김 감독에게 ‘매드 맥스’는 강렬한 영화적 체험으로 남은 작품이다.조지 밀러 감독의 신화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매드 맥스’는 황무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거친 비주얼과 독창적인 액션을 통해 현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이다. 이후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김 감독은 이 작품을 “그 위대한 전설의 시작이자 시리즈 중 가장 자극적이고 거칠며 본능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가공할 만한 에너지의 충격과 두려움은 여전히 생생하다”며 “진정한 ‘시네마틱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증명하는 영화”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국제무대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온 중국 배우 판빙빙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선택했다.‘아가씨’는 치밀한 서스펜스와 강렬한 미장센을 바탕으로 계급과 성별의 억압을 넘어서는 욕망과 해방, 구원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판빙빙은 “극도로 아름다운 미학으로 욕망과 거짓, 권력을 휘감으며 곤경에 처한 두 여성이 서로를 마주하며 마침내 스스로를 구원하고 함께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지게 한다”고 작품을 바라봤다.그러면서 “박찬욱 감독의 카메라가 담아낸 여성들은 위험하면서도 자유롭다”며 “그 명료함과 담대함, 그리고 생명력이 나를 깊이 빠져들게 했다”고 밝혔다.‘설국열차’(2013), ‘곡성’(2016), ‘기생충’(2019) 등에서 빛과 공간, 프레임을 정교하게 설계하며 한국 영화의 시각적 성취를 이끌어온 홍경표 촬영감독은 ‘세 가지 색: 블루’를 골랐다.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인 ‘블루’는 프랑스 혁명의 가치 가운데 하나인 ‘자유’를 상실과 고독의 서사 속에 빛과 색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특히 빛과 색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촬영감독 홍경표의 선택이 더욱 눈길을 끈다.홍 촬영감독은 “볼 때마다 푸른빛 속에 담긴 상실과 고독이 새롭게 다가오고 이미지가 얼마나 깊은 감정을 전할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이미지와 빛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아우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올해 ‘까르뜨 블랑슈’는 유명 영화인이 작품을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 사람의 현재 영화 세계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무엇보다 감독에게는 연출의 원형을, 배우에게는 인물과 여성 서사의 힘을, 촬영감독에게는 빛과 이미지가 가진 감정의 깊이를 각각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선택됐다는 점도 흥미롭다.관객들은 영화제 기간 세 작품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는 동시에 GV를 통해 김지운·판빙빙·홍경표가 직접 들려주는 영화에 대한 기억과 애정, 창작자로서의 시선을 함께 만날 수 있다.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