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기자] “평생 고령을 떠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고령의 미래를 걱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이남철 고령군수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1일 새벽 전해진 비보에 경북 고령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40년 넘게 고령군 공직자로 살아온 뒤 군수에 올라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왔던 이 군수가 식도암 투병 끝에 영면했다. 향년 67세.빈소가 마련된 고령대가야장례식장에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군민과 공직자들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역력했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불과 두 달 전 다시 한번 군민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7월 1일 민선 9기 제47대 고령군수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병마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치료를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병가를 내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지만 끝내 군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그가 군민들에게 남긴 마지막 약속은 여전히 고령 곳곳에 남아 있다.‘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 이남철 군정의 방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고인은 1979년 고령군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41년 동안 기획조정실장과 총무과장, 대가야읍장, 행정복지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고령 행정의 현장을 지켰다.고령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뒤 공직자로 고령을 지켰고, 퇴직 후에는 다시 선출직 군수가 돼 고령의 미래를 책임졌다. 그의 삶에서 ‘고령’이라는 두 글자를 떼어놓기 어려운 이유다.2022년 민선 8기 고령군수에 당선된 이 군수는 취임 직후부터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농촌지역의 구조적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그가 내놓은 해법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5·5·5 프로젝트’였다. 인구 5만 명, 신규주택 5천 호, 청년인구 5천 명을 목표로 주거와 청년, 일자리, 산업을 하나의 성장전략으로 묶겠다는 구상이었다.단기간에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였지만 이 군수는 인구 감소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고령의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그의 행정 스타일은 ‘현장’과 ‘소통’에 가까웠다.오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군수 취임 이후에는 오히려 군청 밖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군민과의 소통콘서트를 이어가며 주민 목소리를 들었고 기업과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며 스스로 ‘고령군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민선 8기 이남철 군정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단연 지산동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다.2023년 9월 지산동고분군을 포함한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고령은 대가야의 옛 도읍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고령군의 오랜 숙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하지만 이 군수는 세계유산 등재 자체를 종착점으로 보지 않았다. 세계유산이라는 브랜드가 관광객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소득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이에 세계유산축전과 문화유산 야행, 미디어아트 사업을 비롯해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 건립, 역사문화특화지구 조성 등 세계유산을 지역의 실질적인 성장동력으로 연결하기 위한 후속 사업을 추진했다.대가야축제도 변화했다.세계유산과 야간관광 콘텐츠를 접목하면서 한때 22만 명이 찾는 지역 대표축제로 성장했고,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와 경상북도 최우수축제에 잇따라 이름을 올렸다.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적인 성과가 이어졌다.대가야 고도(古都) 지정이다.2025년 2월 고령이 고도로 지정되면서 경주·부여·공주·익산 등과 함께 고대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핵심 역사도시로 국가적 가치를 인정받았다.세계유산 등재가 대가야 역사의 세계적 가치를 확인한 사건이었다면 고도 지정은 대가야의 옛 수도 고령의 역사적 위상을 국가 차원에서 다시 세운 일이었다.‘세계유산 도시 고령’과 ‘대가야 고도 고령’. 이 두 개의 타이틀은 이남철 군정이 남긴 가장 선명한 유산으로 평가된다.경제 분야에서도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민선 8기 들어 기업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누적 투자유치 규모가 1조원 수준에 이르렀다.    친환경 청정에너지 발전소를 비롯한 기업 투자유치와 산업기반 확충을 통해 농업과 관광에 상대적으로 의존했던 지역경제 구조에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려 했다.지역내총생산 실질증감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등 지역 성장잠재력도 주목받았다.이 군수에게 기업 유치는 단순히 투자협약서에 서명하는 행사가 아니었다.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청년이 고령에 남을 수 있고, 청년이 남아야 학교와 상권, 지역공동체를 지킬 수 있다는 논리였다.그래서 산업정책은 자연스럽게 청년·주거정책과 연결됐다.청년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교육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도시재생과 생활SOC 확충을 통해 ‘살고 싶은 고령’을 만드는 데 행정력을 집중했다.2025년에는 대가야읍 도시재생사업 선정과 산업안전체험교육장 유치,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 건립 등 문화·관광과 산업·정주 분야를 아우르는 사업들이 잇따라 가시화됐다.농업 역시 놓칠 수 없는 분야였다.농촌 고령화와 인력 부족, 생산비 상승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농업을 단순한 1차 산업으로 바라보기보다 관광과 가공, 유통을 연계해 농가소득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무게를 뒀다.다산면 은행나무숲 일원의 바래미생태레저단지와 회천변 어북실초화단지, 야간경관 명소화, 대가야 빛의 숲 등도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고령의 새로운 관광지도를 만들기 위해 추진한 사업들이다. 그가 꿈꿨던 것은 결국 ‘사람이 돌아오는 고령’이었다.관광객이 찾아오는 고령을 넘어 기업이 투자하고 청년이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어르신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었다.그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인구 3만 명 안팎의 농촌지역이 처한 지방소멸 위기는 한 자치단체장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거대한 구조적 문제였다.    ‘5·5·5 프로젝트’ 역시 이제부터 실질적인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장기 과제로 남았다.세계유산과 고도 지정이라는 화려한 성과를 실제 지역경제와 인구 증가로 연결해야 하는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그러나 이남철 군정이 고령의 발전 방향을 ‘관리’에서 ‘성장’으로 전환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직생활 41년, 군수 재임 4년여.그가 고령군 행정과 함께한 시간은 사실상 한 사람의 직업 인생 대부분이었다.내무행정 유공 내무부장관 표창을 비롯해 행정자치부장관 표창과 국가사회발전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은 행정가였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리는 결국 고향 고령의 군수였다.2022년 처음 군수실에 들어선 뒤 그는 ‘소통과 경청’을 군정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그리고 군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행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해왔다.지난 6월 재선 성공은 그에게 지난 4년의 성과를 완성할 또 한 번의 기회였다.세계유산과 고도라는 두 개의 역사적 자산을 기반으로 관광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유치를 일자리와 인구 증가로 연결하며, 청년이 돌아오는 고령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두 번째 임기는 너무 짧았다.취임 두 달여 만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면.그래서 고령군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한 자치단체장의 별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완성하지 못한 사업들이 있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어서다.오는 3일 오전 8시 발인에 이어 오전 8시 30분 고령군청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평생을 몸담았던 군청에서 고인은 공직자와 군민들의 마지막 배웅을 받는다.1979년 스무 살 청년 공무원으로 처음 군청 문을 들어선 뒤 47년.공무원에서 행정 책임자로, 다시 군민의 선택을 받은 군수로 살아온 그의 긴 여정도 그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그가 추진했던 사업들은 남는다.세계유산 지산동고분군도, 대가야 고도라는 이름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관광·산업·주거 기반도 이제 남은 사람들이 이어가야 할 몫이다.무엇보다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이라는 목표 역시 아직 진행형이다.한 사람의 군수는 떠났지만 지역의 시간은 멈출 수 없다.오히려 지금부터가 이남철 군정에 대한 진정한 평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세계유산과 고도 지정, 투자유치라는 성과가 고령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인지, 그가 씨앗을 뿌린 청년·주거·산업 정책이 지방소멸의 흐름을 되돌리는 열매를 맺을 것인지는 앞으로 고령군과 군민이 함께 풀어가야 한다.평생 고령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행정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령의 미래를 그렸던 군수.이남철 군수는 그렇게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고령에 남았다.“고령의 다음 100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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