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구축한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기업 투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세계 정상들이 모였던 국제행사의 성과를 일회성 홍보에 그치지 않고 기업 투자와 산업협력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반갑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만남과 방문을 실제 투자협약과 공장 설립, 일자리 창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가는 일이다.경주시는 지난 1일 ‘2026년 미래전략 산업혁신 투자포럼’ 참가자들을 지역 산업현장으로 초청해 투자환경과 협력 방안을 소개했다.    방문단에는 중국 첨단 신소재·알루미늄 부품 제조기업과 딥테크 기업 관계자를 비롯해 투자·창업지원 및 법률 분야 관계자 등 20명이 참여했다.이들은 명계3일반산업단지에 있는 신화에스엠지㈜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경주의 산업 기반과 투자 여건을 살폈다. 경주시는 자동차부품과 원자력 전주기 산업을 비롯해 미래자동차, 첨단소재,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전략산업과 기업 지원제도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이번 행보는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제행사 개최를 위해 형성된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는 그 자체만으로 성과가 될 수 없다.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자산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APEC 개최 효과가 시민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경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도시이지만 산업도시로서의 잠재력도 적지 않다.    현재 지역에는 30개 일반산업단지와 5개 농공단지가 조성돼 있고 2천200여개 제조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자동차부품산업과 원자력산업을 중심으로 상당한 제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지리적 이점도 크다. 포항의 철강·이차전지산업, 울산의 자동차·조선·석유화학산업과 연결되는 동남권 산업벨트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미래자동차와 첨단소재, 원전 해체, SMR 등 신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역사문화관광도시를 넘어 미래산업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중국 기업들의 이번 방문은 이러한 경주의 산업적 가능성을 해외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첨단소재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인공지능, 스마트 제조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경주의 자동차부품 및 원자력산업 기반과 중국 기업들의 기술·자본이 효과적으로 결합한다면 새로운 산업협력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기업인 초청과 산업현장 방문만으로 투자가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투자를 결정할 때 산업용지 가격이나 보조금뿐 아니라 전력과 용수, 물류망, 협력업체, 전문인력, 주거·교육·의료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해외 기업은 국내 법률과 세제, 인허가, 노무, 통관절차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부담해야 한다.경주시는 투자기업을 위한 원스톱 지원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투자 검토 단계부터 공장 설립과 가동에 이르기까지 전담 공무원이 책임지고 지원하는 기업별 맞춤형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다국어 상담과 법률·세무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이번 방문단에 중국 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이 참여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단순한 기업 소개를 넘어 실제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경주시는 방문 기업별 관심 분야와 요구 사항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후속 실무협의를 서둘러야 한다.무엇보다 보여주기식 투자유치 활동을 경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거나 계획보다 사업 규모가 축소된 사례가 적지 않다.    투자유치 성과를 협약 금액이나 기업 숫자로만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신화에스엠지의 사례는 경주시가 참고할 만하다. 이 기업은 2022년 경주시와 150억원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듬해 경주공장을 준공했다.    현재 경주 제2공장에 200억원을 추가 투자해 1만4천㎡ 규모의 사업장을 조성하고 50명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기존 투자기업의 증설은 경주의 산업 여건과 행정지원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경주시는 신규 기업 유치뿐 아니라 이미 지역에 투자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재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존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협력업체와 지역 인재를 연결하는 정책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이 될 수 있다.투자의 양보다 질을 따지는 자세도 필요하다. 지역 산업과 기술적으로 연계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선별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지역 업체와의 동반 성장, 청년 고용, 기술 이전, 환경보호 등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투자 금액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환경 부담이나 과도한 재정지원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중국 기업과의 교류를 강화하되 투자유치 대상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제정세와 통상환경 변화에 따라 특정 국가에 편중된 투자구조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APEC 회원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 기업까지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요구된다.APEC 정상회의의 진정한 유산은 새로 지은 시설이나 국제행사를 개최했다는 기록에만 있지 않다.   높아진 도시 브랜드와 국제 네트워크가 기업 투자와 관광객 증가, 양질의 일자리, 청년 정착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APEC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다.경북도와 경주시의 긴밀한 협력도 중요하다. 경북도는 포스트 APEC 투자포럼을 통해 이차전지와 미래자동차, 방위산업, 바이오·식품, 반도체, 드론 등 전략산업 분야의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경주시는 경북도의 산업정책과 연계하면서 지역이 비교우위를 가진 자동차부품·원자력·첨단소재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경주가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라는 명성에 안주해서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관광산업과 제조업, 첨단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균형 잡힌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중국 기업인 초청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출발점이다.경주시는 APEC을 통해 맺은 인연을 실질적인 투자와 산업협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행사성 방문과 선언적 업무협약을 넘어 기업이 실제로 공장을 세우고 지역 청년을 고용하는 단계까지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포스트 APEC의 성패는 앞으로 유치할 투자 규모가 아니라 그 투자가 경주에 얼마나 오래 뿌리내리고 지역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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