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수산물 할인전에 나섰다.
고물가로 팍팍해진 서민 살림살이를 고려하면 반가운 소식이다. 차례상과 명절 선물 준비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고,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어민에게 판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다만 할인율과 판매 실적을 앞세운 일회성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싸게 사고 생산자는 제값을 받는 상생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정부는 올해 추석 민생안정대책의 하나로 농축산물을 최대 40%, 수산물을 최대 50% 할인 판매한다.
사과·배·소고기 등 농축산물 할인은 오는 23일까지, 명태·고등어·김 등 주요 수산물 할인은 9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진행된다.
전통시장에서는 구매 금액의 일정 비율을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환급행사도 열린다.
정부가 농수산물 할인 지원에 투입하는 예산은 1천억원을 웃돈다. 역대 최대 규모다.대구·경북지역 자치단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경북도는 농특산물 온라인 쇼핑몰 ‘사이소’에서 9월 한 달간 추석 특별기획전을 연다.
상주시는 ‘명실상주몰’, 영천시는 ‘별빛촌장터’를 통해 쌀과 사과, 배, 포도, 곶감, 축산물, 전통 가공식품 등을 할인 판매한다.
다른 시·군도 온라인 쇼핑몰과 로컬푸드 직매장, 전통시장 등을 중심으로 할인쿠폰과 무료배송, 선물세트 기획전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지역에서 생산한 우수 농수산물을 전국 소비자에게 알릴 기회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어촌 고령화와 생산비 상승, 소비 침체라는 삼중고를 겪는 지역 농어민에게 추석 대목은 한 해 소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도시 소비자와 지역 농가를 직접 연결한다면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이고 생산자 몫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관건은 할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춘다는 이유로 농어민의 납품가격까지 깎는다면 사업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할인 비용은 정부와 자치단체, 유통업체가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생산자에게는 적정한 출하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판매 수수료와 포장비, 택배비 등 부대비용을 농가에 떠넘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소비자의 혜택이 곧 생산자의 손실이 되는 할인전은 결코 상생 행사라 할 수 없다.눈속임 할인도 철저히 막아야 한다. 행사 직전 정상가격을 올린 뒤 할인 폭을 부풀리거나 시중가격보다 비싼 제품에 할인 표시만 붙이는 사례가 발생하면 정책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자치단체는 참여업체의 판매가격과 원산지, 상품 품질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할인 전후 가격과 지원금액을 소비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전통시장과 소규모 생산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상품권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할인행사가 열려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
전통시장 현장 할인과 온누리상품권 환급 창구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용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대형마트와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예산과 소비가 집중되지 않도록 지역 농협과 로컬푸드 매장, 산지 직거래 장터의 참여 기회도 넓혀야 한다.품질 관리와 배송 대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명절을 앞두고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면 배송 지연이나 상품 훼손, 품질 불량이 발생하기 쉽다.
과일의 크기와 당도, 수산물의 신선도, 가공식품의 원재료와 원산지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출하 전 검수를 강화해야 한다.
불량 제품이나 배송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교환·환불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한 번 훼손된 신뢰는 해당 농가를 넘어 지역 공동브랜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추석 할인전의 성과를 단순한 판매액이나 주문 건수로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
신규 고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생산자 소득이 실제로 얼마나 증가했는지, 명절 이후 재구매로 이어졌는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의 지역 농수산물 구매, 정기배송과 구독 서비스, 학교·공공급식 연계 등 안정적인 판로를 마련해야 할인전의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농수산물 할인쿠폰은 당장의 장바구니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물가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은 아니다.
이상기후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농자재·인건비 상승, 복잡한 유통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가격을 억지로 누르다가 생산 기반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소비자 물가 안정과 농어민 소득 보장은 어느 하나를 희생해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각 지역에서 열리는 추석 농수산물 할인전이 보여주기식 명절 행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소비자는 품질 좋은 지역 농수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고, 농어민은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도
소비의 온기가 퍼져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할인율 경쟁보다 유통비 절감과 생산자 보호, 품질 관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할인전이 민생을 보듬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진정한 상생의 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