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비롯해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경북 울진군, 전남 영광군 등 원자력발전소 소재 5개 지방자치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원전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국가 전력 생산의 핵심 기반을 제공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불안과 각종 규제를 감내해 온 지역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만남은 단순한 친목이나 선언적 연대에 머물지 않고 정부의 원전 정책을 바로잡는 실질적인 협의체로 발전해야 한다.우리나라는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산업 경쟁력과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유지해 왔다.    그 과정에서 원전 소재 지역은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원전으로 발생하는 편익은 전국이 공유한 반면 사고 위험과 환경적 부담, 개발 제한, 지역 이미지 훼손 등 유·무형의 비용은 해당 지역과 주민들에게 집중됐다.    국가 에너지정책의 구조적 불균형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원전 소재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현안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전 안전과 방사능 방재체계 강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제도 개선, 지역자원시설세 현실화, 주민 건강관리 확대,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전 폐로에 따른 지역경제 대책 등이 모두 시급하다.    개별 지자체의 요구만으로는 정부 정책과 법령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5개 지자체가 공동 요구안을 마련하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일관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무엇보다 원전 정책 결정 과정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신규 원전 건설이나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확충, 원전 해체는 주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와 사업자가 먼저 방침을 정한 뒤 주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되풀이돼 왔다. 이는 진정한 소통도, 지역 상생도 아니다.정부는 원전 소재 지자체를 단순한 협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 결정의 핵심 당사자로 인정해야 한다.    주요 정책의 계획 단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도록 하고, 안전성 검증 과정에도 주민과 지역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원전 운영과 사고 대응에 관한 정보도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 주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원전 정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욱 절박하다. 원전 부지 안에 설치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추가 저장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국가 차원의 최종 처분시설 마련을 늦추는 사이 원전 소재 지역이 사실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까지 장기간 떠안게 될 우려가 제기된다. 임시저장이 기약 없는 장기저장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정부는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기간과 반출 계획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부지 내 저장시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면 주민 동의와 철저한 안전성 검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에 따른 별도의 지원과 보상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국가정책의 지연으로 발생한 부담을 지역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이라고 할 수 없다.원전 관련 재정지원 제도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현재의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금과 지역자원시설세만으로는 주민들이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보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가 상승과 원전 운영 규모, 위험 부담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지원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지원금도 소규모·단기 사업에 흩어 쓰기보다 의료·교육·교통·주거환경 개선과 미래 산업 육성 등 지역의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원전 가동 중단과 폐로 이후의 지역경제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원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은 발전소 운영이 종료되면 세수와 일자리 감소, 인구 유출이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는 원전 해체산업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소산업, 방사선 활용산업, 에너지 연구기관 등을 원전 소재 지역에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원전이 문을 닫은 뒤 대책을 내놓는 것은 이미 늦다.경북은 경주와 울진에 원전이 밀집해 있고 방폐장과 원자력 관련 연구시설도 들어서 있다.    그만큼 국가 원자력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크지만, 지역 주민이 체감하는 혜택과 미래 발전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는 원전 관련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데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지역이 원자력산업의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산업화의 중심지로 성장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이번 경주 회의는 원전 소재 지자체들이 공통의 어려움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회의 개최 자체가 성과일 수는 없다. 5개 지자체는 안전과 재정, 사용후핵연료, 주민 참여, 폐로 이후 산업 전환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공동건의안을 마련해야 한다.    협의 결과와 정부의 답변, 과제별 추진 상황도 주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정부와 국회 역시 원전 소재 지자체의 요구를 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국가가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계속 활용하려면 위험과 책임을 부담하는 지역에 정당한 권한과 합당한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원전의 혜택은 국가 전체가 누리면서 부담은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경주에서 모은 5개 지자체의 목소리가 공정하고 책임 있는 국가 에너지정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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