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방송=손중모 기자]서울 한복판 미술관의 전시실에 강렬한 색으로 표현된 산이 펼쳐진다.붉고 푸른 색면이 겹치고 삼각형과 곡선으로 단순화된 산과 능선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긴 산이 아니다. 자연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다시 만들어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산이다.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오는 10월 25일까지 유영국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열리고 있다.    미공개 작품을 비롯해 회화와 부조,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 등을 통해 평생 자연과 추상의 관계를 탐구했던 유영국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다.전시를 계기로 유영국의 예술세계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그의 예술적 뿌리와 맞닿아 있는 고향 경북 울진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한다.유영국에게 울진은 단순히 태어나고 자란 고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산과 바다, 계곡으로 둘러싸인 울진의 자연은 그가 자연의 형태와 색을 경험하고 자신만의 조형감각을 키워나간 원초적 공간이었다.유영국의 그림에서 산은 사실적인 풍경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산과 능선은 점과 선, 면으로 단순해지고 자연의 색은 화가의 감각을 거치면서 강렬한 색채로 다시 태어난다.그가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색과 형태를 통해 자연의 본질에 다가갔다면, 울진에서는 그 작품세계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는 자연을 직접 만날 수 있다.화폭 밖으로 나와 유영국의 색을 따라 울진으로 떠나보자. 울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색은 ‘초록’이다.울진의 산과 숲은 초록이라는 색이 얼마나 깊고 다채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울진의 산을 지켜온 금강소나무가 있다.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이어지는 금강송 군락지는 울진을 대표하는 산림자원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소나무 숲이다.금강소나무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곧게 뻗은 금강송과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형태를 단순한 선과 면으로 바라봤던 유영국의 시선을 떠올려보기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금강송에코리움에서는 숲과 보다 가까이 호흡하며 울진 금강송의 생태적 가치와 자연이 주는 휴식을 경험할 수 있다. 울진의 초록은 금강송에서 끝나지 않는다.응봉산은 덕구온천과 연계해 산행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고, 백암산은 백암온천을 품은 산으로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구수곡자연휴양림에서는 울창한 숲속에서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춰볼 수 있다.망양정과 월송정 일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숲의 초록과 동해의 푸름이 한 화면 안에 겹쳐진다. 산과 바다를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울진 특유의 자연풍경이다.숲에서 내려오면 두 번째 색, ‘옥빛’이 기다린다.울진의 계곡은 가을을 더욱 투명하게 만든다. 맑은 물과 기암절벽, 짙은 숲이 어우러지며 산과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색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곳이 불영계곡이다.약 15㎞에 걸쳐 이어지는 계곡에는 맑은 물길과 기암괴석,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다. 부처바위와 사랑바위 등 독특한 암석 경관까지 더해지면서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길 자체가 하나의 풍경 감상이 된다.덕구계곡에서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시원한 물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산길 곳곳에서 만나는 다리는 걷는 재미를 더하고, 계곡과 숲이 만들어내는 청량한 풍경은 가을 여행의 여유를 선사한다.백암산 자락의 신선계곡 역시 이름처럼 깊고 고요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기암절벽과 소나무 숲,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도시에서 쌓인 피로가 자연스럽게 잦아든다.유영국이 자연에서 색과 형태의 본질을 발견했다면 울진의 계곡에서는 물과 바위, 나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선과 면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계곡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면 여행의 세 번째 색인 ‘푸름’이 펼쳐진다.울진의 동해는 막힘이 없다.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짙푸른 바다와 파도,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며 시선을 멀리 끌어당긴다.후포·구산·망양정·후정·나곡해수욕장 등 울진의 해변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청정한 동해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가만히 해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동해를 만나고 싶다면 바다 위로 나가볼 수 있다.후포요트학교에서 운영하는 요트 체험을 이용하면 육지에서 바라보던 동해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 위에서 울진의 해안선을 바라보고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마주하는 순간, 울진의 ‘푸름’은 더욱 선명해진다.구산어촌체험마을과 기성어촌체험마을, 거일햇빛뜰어촌체험마을에서는 울진의 바다를 단순히 바라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어촌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보는 여행’에서 ‘경험하고 머무는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이다.울진 여행이 특별한 것은 산과 계곡, 바다가 각각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금강송 숲의 초록과 계곡의 옥빛, 동해의 푸름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여행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데 울진만의 매력이 있다.아침에는 금강소나무숲길에서 숲의 향기를 맡고, 계곡을 따라 걸으며 맑은 물소리를 들은 뒤 오후에는 동해 앞에 서서 파도를 바라보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한 화폭 안에서 여러 색과 형태가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듯 울진에서는 서로 다른 자연의 색이 만나 하나의 여행을 완성한다.유영국은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대신 자신이 바라보고 느낀 자연을 색과 선, 면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화폭에 등장하는 강렬한 색채와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형태를 바라보다 보면 자연을 새롭게 보는 화가의 시선을 만나게 된다.그리고 그의 고향 울진에서는 그림이 되기 이전의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오랜 세월 산을 지켜온 금강송, 바위 사이를 흐르는 맑은 계곡, 수평선 너머까지 펼쳐지는 동해. 유영국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느꼈을 울진의 자연은 지금도 저마다의 색으로 여행객을 맞는다.미술관에서 유영국의 화폭을 만났다면 이번 가을에는 그림 밖으로 한 걸음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산이 빚어낸 초록, 계곡이 빚어낸 옥빛, 바다가 빚어낸 푸름.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 태어난 고향에서 만나는 ‘3색 울진’은 그림을 바라보는 여행에서 자연을 직접 느끼는 여행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가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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