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청년 유출과 저출생, 고령화로 지역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렵게 마련된 재원이 시설 건립과 단기 행사에 소진된다면 지방소멸을 막기는커녕 지방재정의 부담만 키우게 된다.
기금 확보 실적을 내세우기에 앞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역에 정착했고 주민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져야 할 때다.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감소지역의 자립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2022년 도입됐다. 2031년까지 매년 1조원 규모로 운용되는 한시적 재원이다.
일자리와 주거, 교육, 의료, 돌봄 등 지역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 인구 유출을 막고 새로운 인구를 유입시키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단순한 지역개발사업이나 낙후시설 정비에 사용하는 일반 보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을 들여다보면 기금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복합문화센터와 체험관, 청년공간, 관광시설 등 건물부터 짓고 보는 사업이 적지 않다.
이미 있는 공공시설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비슷한 시설을 또 만들거나, 준공 이후 운영 주체와 수익모델도 뚜렷하지 않은 사업이 추진되기도 한다.
사람이 없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 이용할 사람조차 불분명한 건물을 세우는 것은 정책이라 할 수 없다.경북은 전국에서 인구감소지역이 가장 많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상당수 군 지역에서 청년층 유출과 출생아 감소,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학교와 어린이집은 문을 닫고 읍·면 소재지에는 빈집과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의료기관과 대중교통 등 기본적인 생활 기반마저 약해지는 곳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외형적인 시설 확충에 기금을 집중하는 것은 지방소멸의 원인을 외면한 처방이다.더 큰 문제는 사업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지 확보와 행정절차, 주민 협의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부터 계획하면 예산을 확보하고도 착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집행이 지연되자 연말에 사업비를 서둘러 사용하거나 계획을 급하게 변경할 우려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업에 예산부터 배정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기금은 적재적소에 투입될 수 없다.기금사업이 자치단체장의 치적 홍보 수단으로 변질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눈에 잘 띄는 건물은 준공식을 열고 성과를 홍보하기 쉽다. 반면 일자리와 돌봄, 의료, 교육처럼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업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지방소멸 대응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 여건의 변화다.일회성 행사와 반복적인 교육·컨설팅도 재검토해야 한다. 청년 창업학교를 열고 귀농·귀촌 교육을 몇 차례 진행했다고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 수와 만족도만으로 사업 성과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지원을 받은 청년이 지역에서 창업해 고용을 만들었는지, 귀농·귀촌 가구가 몇 년 뒤에도 정착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숫자가 아니라 실제 정착률로 사업의 성패를 평가해야 한다.경북도와 일선 시·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을 원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별 예산과 집행률은 물론 계약 방식, 이용자 수, 운영비 부담, 고용 창출과 인구 유입 효과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추진이 늦거나 성과가 불투명한 사업은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남은 재원은 청년 일자리와 공공의료, 아이 돌봄, 주거와 교통 등 시급한 분야로 돌려야 한다.지방의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지방의회가 집행부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승인하고 집행률만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존 시설과 중복되는지, 사업 종료 후 자치단체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실제 인구 유입 효과가 있는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기금이 투입된 시설과 사업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성과평가와 현장 점검도 실시해야 한다.정부 역시 사업계획서를 잘 꾸민 지자체에 많은 기금을 나눠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금 확보 규모보다 실제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장기간 집행하지 못하거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사업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대로 청년 고용과 주거 안정, 생활인구 확대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낸 지역에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지방소멸대응기금은 무한정 지급되는 재원이 아니다. 2031년 운용 기간이 끝난 뒤 지역에 남아야 할 것은 텅 빈 건물과 관리비 청구서가 아니라 일자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다.
이제 지방소멸 대응의 성과를 ‘얼마를 확보했느냐’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돈으로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몇 가구가 정착했으며 주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물어야 한다.경북도와 시·군은 기금 확보 경쟁에서 벗어나 사업의 실효성으로 평가받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건물을 남기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돈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기금 운용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지방소멸의 시간만 늦추지 못했다는 준엄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